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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속보] <콜트 이동호조합원분신-2신> "나를 두 번 죽이지 마라"


전국금속노동조합

선전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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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성심병원에 입원중인 이동호조합원 면회 =

분신을 한 이동호조합원은 현재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 입원중이다.
13일 오후 3시부터 약 30분간, 본조 선전홍보실에서는 이동호조합원을 면회했다.


이동호 조합원은 인터뷰에서 현재 자신의 분신을 가지고 경찰과 사측에서 방화로 몰려는 음모에 대해서 강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동호조합원은 분신 당일, 2007년 4월 12일 정리해고의 부당성이 지방노동위원회의 판결로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년 1월에 있을 중노위에서 사측이 승소를 확신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을 전해 듯고 강한 순간적 분노와 함께 “내 한 몸 희생으로 부당한 정리해고가 철회되고 원직복직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불을 당겼다고 한다.

이동호 조합원은 사측이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정리해고를 했다고 해놓고 정리해고 이후 잔업과 특근은 더 늘어나고 임금인상과 성과급 지급, 관리직에 대한 진급 등 예초에 정리해고의 명분으로 삼은 ‘경영의 어려움’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또한 1,200억대의 엄청난 부를 축적한 박영호 사장은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쳐 일한 노동자를 더 이상 배신하지 말고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원직복직 시킬 것을 주장했다.

이동호 조합원은 또한 “내가 사측의 논리대로 방화를 하려고 했으면 회사를 불태우지 왜 내 몸에 시너를 끼얹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사측의 얘기만 듣고 조사를 벌이는 경찰과 언론사들의 보도 태도는 분신으로 죽음을 각오했던 사람을 두 번 죽이는 행위임을 규탄하고 공정수사와 공정보도를 주장했다.

이동호조합원의 담당의사의 소견으로는 팔의 화상이 제일 심해 3도의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잘못하면 한 쪽 팔을 영원히 쓸 수 없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분신속보 1신>

콜트악기 부당해고에 맞서 이동호 조합원 분신 시도

= 사측, 5개월째 부당해고 원직복직 판결 외면 =


콜트악기 회사 측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349일째 천막농성을 벌여오던 이동호(43세) 조합원이 12월 11일 밤11시15분경 천막농성장 앞에서 자신의 몸에 시너를 붓고 분신을 시도했다.
현재 이동호 조합원은 손과 얼굴 목에 2도 화상을 입어 부천 베스트안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콜트악기 회사 측은(대표 박영호) 2007년 3월 물량감소를 이유로 조합원 37명에 대해 일방적인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콜트악기 지회와 정리해고 된 조합원들은 현재까지 회사를 상대로 투쟁해 왔지만 회사는 지금까지 교섭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고, 지난 8월 17일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라는 판정이 났지만 대법까지 가겠다며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이동호 조합원은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해 왔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회사 측이 어떠한 태도 변화도 없는 것에 대해 분노해왔다.

함께 정리해고 투쟁을 해온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최근에는 “나 한 몸 희생되어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며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토로했었다고 한다.

12월 12일 오전 9시 인천지부와 콜트악기 지회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오전 10시 악랄한 콜트자본 규탄 대회를 콜트악기 회사 마당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아래 첨부 글은 2004년 9월 금속노동자 11호에 실린 평소 연대에 앞장서는 이동호 조합원을 취재한 기사다.


금속노동자 제11호 [특집-기획] 더불어 삶 ①
사랑의 도시락 배달부' 금속노조 콜트악기지회 이동호 대의원

“주변을 돌아보고 살면 더 좋아지지 않겠어요?"

“오늘은 토요일. 금요일까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5시 30분에 퇴근하는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날이다.

10시 30분, 산곡동의 ‘노인복지협의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11시 30분, ‘노인복지협의회’에서 여러 개의 ‘도시락’을 들고 다시 길을 나선다. 지하, 반 지하, 언덕 집, 무너져 가는 집. 도시락의 주인인 혼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시는 곳이다. 언덕 위에 사시는 할머님이 무척 반갑게 맞아주신다.

허리가 많이 구부러지셔서 생활하시는 게 무척 힘들어 보인다. 연세가 많으셔서 기억은 뚜렷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이 할머님은 나를 특히 반갑게 맞아주신다. 언덕을 걸어 올라가 어르신들께 도시락을 배달한다. 점심시간에 맞춰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갖다드려야 한다”

콜트악기지회 이동호대의원(41세)은 매주 토요일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한다. 작년 말, 「노동사목」에서 알게된 김상용씨가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을 배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른 동참했다. 살아가면서 누굴 위해서 조그만 일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실천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는 노인복지협의회와, 소년소녀 가장의 학비 지원을 위한 ‘세실리아 장학회’에 후원금을 내고 있다.

“노동자들의 생활이 예전보다 조금은 나아진 것 같습니다. 주5일제도 시작되고 있는데 시간 나는 대로 주변을 돌아보고 도움을 주면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도 좋아지지 않을까요?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고, 꼭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만 있으면…” 사실, 주변에 작은 일이라도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다들 살기 어려우니까 그렇겠죠”라며 웃는다.

그는 부모님과 같이 산다. 칠순인 아버님이 ‘내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아직도 일을 하신다고 한다. 그는 노인들이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무척 안타까워한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물어보았더니 한참을 머뭇머뭇 하다가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조합활동이요? 당연히 해야죠!” 그가 콜트악기에 입사한 지 8년. 그 때부터 노조활동을 해왔고 현재 대의원이다. 전에 있던 직장에서는 노조 홍보부장을 4년 했다. 그는 수많은 ‘뺏지’를 달고 다닌다. ‘금속노동자 총단결’이 빨간 모자의 가장 가운데에 달려있고 30여 개의 뺏지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거요? 이것도 노조에 대한 홍보입니다.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홍보효과가 좋아요” 노동이 있는 한 노조는 있어야 한다고 믿는 그에게 있어 ‘노조활동’과 ‘봉사활동’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힘들다고 보는데… 어쨌든 좋은 사람들이 많이 활동해서 차별 없고 평등하고 어려운 사람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 아니겠어요?”
 

2007-12-12 1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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